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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타이저(사전지식)

패션 명언 - (5)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by 크림슨 킴 2023. 1. 18.
I think there is beauty in everything.
(나는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 Alexander McQueen(알렉산더 맥퀸)

 

패션계의 악동, 알렉산더 맥퀸.

 

우리나라에서 알렉산더 맥퀸이라 하면, 일진들에게 얼룩진 비운의 신발.

오버솔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알렉산더 맥퀸 오버솔.

(현지 명칭으로는 'Oversized Trainers'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맥퀸 오버솔을 유행과는 관계없이 참 좋아하고, 한 족 소유하고 있지만.

이 스니커 한 족은 그의 의상철학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

 

지금은 Y2K를 위시한 레트로가 유행하는 시대.

'로우 라이즈'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22SS 미우미우가 쏘아올린 작은 공, 로우 라이즈.

한껏 내려입은 바지춤, 장골(흔히 치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이게 입는 것이 특징이다.

입는 모델로부터 자유분방함이 묻어난다.

단순 패션쇼 뿐 아니라 국내 셀럽들도 유행을 타고 하나 둘 씩 로우라이즈를 입은 채로 포착되고 있다.

파격적인 로우라이즈를 선보인 아이들.

이 로우라이즈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모두가 예상했듯 '알렉산더 맥퀸'이다.

로우라이즈는 2000년대에 본격적인 유행을 거쳤지만, 맥퀸이 그것을 발표한 것은 무려 1993년의 첫 번째 패션쇼에서였다.

Bumster(범스터)라고 부르는 엉덩골이 보이는 로우 라이즈.

이 한 번만으로 그의 이름은 패션계에 널리 알려졌고, 악동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범스터의 소프트한 사진이라도 가져오고 싶었는데, 차마 가져오지 못했다.

궁금한 이들은 구글링하기를 바란다.)

 

이후의 그의 시그니처 디자인에는 늘 두려움과 죽음이 서려 있었다.

패션쇼 역시 스산하리만큼 채도 높은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해골들이 즐비했다.

맥퀸의 패션쇼 中.

한참 커뮤니티 등지에서 조롱하던 '패션쇼 특징' 따위의 게시글에도 한 번쯤 올라왔던 것 같기도 하다.

대체 저런 디자인을 어찌 입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을 이해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자신만의 좁은 세상으로 바라보는, 참으로 우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누구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바라보면서 '이런 걸 만들어서 어디다 쓰냐'고 말하지는 않는다.

패션쇼에는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오트 쿠튀르(오뜨 꾸뛰르)>와 <프레타포르테>.

후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성복을 의미하고, 전자는 예술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맞춤옷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오트 쿠튀르는 디자이너가 상상하는 브랜드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면서 바라보고 있으면, 디테일 면에서 천재적이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 밖에 없다.

맥퀸이 아니라면 그 누가 저런 발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알렉산더 맥퀸 스컬 스카프.

 

프레타포르테적인 측면에선 해골 프린팅 스카프가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도 과거 큰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는 가품까지 즐비했을 정도였다.

 

뒤늦게 말하는 것이지만 실은, 그의 명언에는 이어지는 문장이 있다.

 

"What 'normal' people would perceive as ugly, I can usually see something of beauty in it."
('평범한' 사람들은 추하다고 여길지라도, 나는 대개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해골'이나 '죽음'이란 얼핏 부정적으로만 여겨지거나, 중2병처럼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다.

로우 라이즈도 마찬가지다.

바지를 입은 채로 보이는 엉덩골이란 추하다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유행으로 일궈내고, 신념으로 말미암아 이름을 세상에 외치기까지 했다.

필자는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그'답게 살았던 사람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 명언을 단순한 번뜩이는 발상만으로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추함과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다.

삼라만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만약 독자인 당신에게 콤플렉스가 있다면, 그것 역시 '있는 그대로'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본인은, 그것만이 미래에 무가치하게 소모되는 '감정'과 흘러가는 '시간'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궁극적인 수단이라 생각한다.

이 말 / 글로 하여금 맥퀸과 필자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