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패딩, 일반패딩, 바람막이.
길거리를 둘러보면 하루에도 몇 번을 노스페이스를 마주친다.
2023년 1월.
우리는 大 노스페이스의 시대를 살고 있다.
국내에서 일진의 상징이었던 노스페이스가 불황을 딛고 어떻게 다시 유행할 수 있었는가.
그 비밀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헤친다.
2000년대 초
당시 우리나라는 '니뽄삘'의 대유행기였다.
니뽄 - 닛폰(にっぽん) - 일본(日本)을 의미하며.
삘 - Feel - 기분(스타일)을 의미한다.
일본의 번화가 하라주쿠의 명칭을 따 '하라주쿠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한류 열풍이 세계에 불듯, 당시 국내에는 일본 열풍이 불었다고 볼 수 있다.
유행은 연예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번지게 되었고, 일본 유명인사들의 헤어스타일을 흉내내고, 나아가 패션을 따라입기에 이른다.
그 중 노스페이스 열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사람 중 하나는 일본의 록밴드, 드래곤 애쉬(Dragon Ash)의 리더 <후루야 켄지>다.
그는 밴드의 보컬인 동시에 일본 스트릿 패션의 선구자였다.
작은 신장을 가졌지만, 일본 여배우들과 아이돌들까지.
수많은 스캔들이 뿌리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입고 등장했던 것이 노스페이스를 상징하는 '1996 눕시'였다.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었던 것은 켄지만이 아니였다.
현재 한국의 4대 기획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쟈니스 사무소>가 있었다.
2001년 쟈니스의 KAT-KUN이라는 3인조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한 카메나지 카즈야는 당시 노스페이스를 입었다.
막내 포지션을 맡고 있었던 카즈야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한국의 노스페이스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일본의 대배우이자 쟈니스의 보이그룹 소속이었던 '야마시타 토모히사' 역시 노스페이스를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각각 '카메'와 '야마삐'라는 애칭으로 국내에서도 팬층이 두터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두 사람은 추후 2020년이 되어 미성년자 음주 스캔들에 엮어 망신을 당하게 된다.)
한국의 중고등학교 일진들이 입게 된 것에는 배달 아르바이트 때 추웠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당시 분위기상 이들의 영향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결론
다음 시간은 대망의 대혼돈기.
일진과 양아치의 노스페이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찾아온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라.
착각 방지차 미리 말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스페이스를 좋아한다.
지금은 단지 시대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뿐, 시리즈의 결론에서 본격적인 의견을 밝힐 것이다.
그럼 이상으로 노스페이스 시리즈의 첫 글을 마친다.
오늘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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