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멍은 한 떄 슈퍼-오버사이즈 패션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였다.
14년에 런칭된 베트멍은, 16년경부터 18년경까지 전성기를 누리며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아이템들을 내밀었다.
하나같이 반문화 특유의 유쾌함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디자인이었다.
초판 후드를 비롯해 다크니스, 유니콘, 건클럽 등의 스웻셔츠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셀럽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은 그 베트멍이 가지고 있었던 '짝퉁 같은 진퉁'에 대해 알아본다.
소리지르는 니가
왼쪽 가슴팍에 박힌 익숙한 로고.
영락없는 미국 후드 스웻 브랜드 <챔피온>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품 챔피온은 오른쪽 뿐.
왼쪽은 베트멍에서 패러디한 16SS의 챔피온이다.
당연히 로열티는 지불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챔피온이 베트멍을 고소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 제일로 하입한 브랜드였기 때문에 상표권 위반보다는 협업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는지.
베트멍은 1년 뒤인 17SS, 챔피온과의 정식 콜라보레이션으로 돌아왔다.
물론 해당 컬렉션 역시 기대만큼이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캐나다구스
이제는 당연하지만(?) 캐나다구스는 오른쪽 뿐이다.
왼쪽은 16FW의 베트멍 컬렉션.
캐나다구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스노우만트라'를 패러디해 슈퍼오버사이즈로 재해석했다.
이쪽은 챔피온보다 한 수 위의 악질이었다.
빵빵한 구스다운(거위털) 충전재에 코요테퍼로 판매되는 원본에 비해.
부족한 솜(가짜깃털) 충전재에 페이크퍼(가짜털)로 판매되었다.
베트멍을 굉장히 좋아하는 필자도 잠시간 소유했던 적이 있는데, 가격(약 300만원)과 무게 대비 방한 능력은 부정적인 의미로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베트멍의 이름 앞에 방한능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베트멍과 캐나다구스 역시 손잡고 17FW 콜라보레이션 스노우만트라를 출시했다.
이쪽은 진짜 캐나다구스였기 때문에 방한 능력은 보장되어 있다.
발매가가 약 450만원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지만,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할까?
남양주 컬렉션
영국의 의류 업체인 '매치스패션'은 갑작스럽게 한국에서 베트멍의 '창고 세일'이 시작된다는 인스타그램을 업로드한다.
미국 다음 가는 매출을 보장하는 한국의 공식 데뷔무대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밝혀진 컬렉션의 이름은 "Official Fake(공식적인 가짜)" 캡슐 컬렉션.
이에 대한 내용은 뎀나 바잘리아(베트멍의 창업주이자 전성기를 이끈 디자이너)는 Wkorea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품이 많은 나라 중 하나죠.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타일들(특히 베스트셀러들)을 아주 신선하게 재해석된 제품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베트멍의 카피 제품들을 응용해 새로운 가먼츠를 만들어내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official fake VETEMENTS collection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당연히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형도시에서 개최될거라 유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알려진 정보는 의외.
주소지는 경기도 남양주 와부읍 궁천로 167-7.
시간은 10월 17일 단 하루. 그 중에서도 오후 2시에서 7시. 겨우 5시간.
이 소식을 접한 패션피플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양분되었다.
- 인터뷰 내용도 그렇고,시간도 짧고, 심지어 '읍'으로 초대하다니. 이건 베트멍이 한국을 조롱하는것이 틀림없다.
- 일단 컬렉션 나오는거 지켜보고 욕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마침내 컬렉션 당일.
캡슐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베트멍의 전면부 메탈 로고를 하고 있었던 것은 검은색의 초판 후드(16FW) 뿐이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상품은 바로 붉은색으로 출시된 일명 '남양주 후드'였다.
단순한 색장난은 아니고, 아웃핏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100만원에서 200만원을 호가하는 초판에 비해 겨우 74.5만원이라는 낮은 발매가.
덕분에 이 후드는 입장하는 사람마다 한 벌씩 집어가는 통에 조기품절되었다.
(가품을 리폼해서 만들었다는 뜬소문도 돌았지만 사실이 아니며, 가품의 아이디어를 차용했을 뿐이다.)
하나 더 인기를 끌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일론 소재의 우비(레인코트)였다.
명품 브랜드치곤 이례적으로 Free사이즈로 올라왔으나, 겨우 20.9만원의 저렴한 가격 덕에 판매 5분만에 완판되었다고.
전반적으로 괜찮은 가격에 좋은 퀼리티로 출시했기 때문에, 남양주의 페이크 컬렉션은 결과론적으론 높은 평가를 받고 막을 내렸다.
베트밈
챔피온과 캐나다구스를 패러디한 베트멍.
그들은 자신들 역시 패러디의 대상이 되리라고 예상했을까?
브루클린의 대학생 대빌 트랜은, 베트멍의 비싼 가격대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다.
'베트밈(VETEMEMES)'였다.
상단의 왼쪽 상품이 베트밈 레인코트, 오른쪽 상품이 5분만에 완판되었다는 베트멍 페이크 컬렉션의 레인코트다.
소재도 핏도 유사했지만, 패러디 쪽은 한화 6만원대(59달러)로 저렴하게 출시되었다.
이와 같이 베트밈의 모토는 "좋은 옷을 싸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였다.
대빌은 패러디 브랜드를 런칭하였을 뿐 명성 있는 디자이너는 아니였으므로, 뎀나에 버금가는 재해석 능력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베트밈의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베트멍의 디자인을 Ctrl+C / Ctrl+V(복사 / 붙여넣기)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뎀나는 베트밈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했을까?
한번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자.
"베트밈에 대해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짝퉁이든 패러디든 상관하지 않는다. 대빌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즐겼으면 좋겠다. 우리가 베트멍을 만드는 것만큼."
뎀나는 쿨하게 베트밈의 존재를 인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인터뷰 덕에 베트밈은 더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베트밈의 존재를 인정받은 대빌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뎀나는 베트멍 뿐 아니라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대빌은 발렌시아가가 아닌 불렌시아가를 출시하였다.
브랜드 콘셉트는 베트밈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뎀나는 불렌시아가의 존재 역시 건드리지 않았고, 정작 베트멍에서 뎀나가 떠난 지금조차도 베트밈과 불렌시아가는 계속되고 있다.
결론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ㅋㅋ 이거ㅋㅋ"하면 패러디고.
"어! 이거!"하면 오마주고.
"어..? 이거..?"하면 표절이라더라.
표절의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원작자가 문제 삼으면 표절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러디나 오마주다.
힙합으로부터 시작된 반문화는 패러디를 형성했고, 보는 이로 하여금 흥미와 웃음을 유발한다.
필자 역시 가끔은 패러디 상품들을 즐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고, 원본을 비튼 독특함도 있으니까.
흘러가듯 흐름을 즐기자.
국내 브랜드 <상상> 외 보세 브랜드에서 출시한 파타고니아 패러디를 남긴다.
오늘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디저트(추가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개합니다 : 깔창, 구름같은 착화감. (0) | 2023.01.28 |
---|---|
짝퉁 같은 진퉁 패션 (3) 디젤 (0) | 2023.01.21 |
짝퉁 같은 진퉁 패션 (1) 구찌 (0) | 2023.01.19 |
비건 레더는 대부분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0) | 2023.01.10 |
R.I.P. 비비안 웨스트우드, 고인의 개쩌는 삶을 회고하며. (0) | 202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