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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추가정보)

패션의 역사 : 화려함의 정수, <발렌티노>

by 크림슨 킴 2023. 3. 5.

左 발렌티노 로고, 右 발렌티노 가라바니 (1932 ~)

럭셔리 브랜드 '발렌티노'는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가 196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설립하였다.

창립자인 가라바니는 1932년, 이탈리아 북부 Lombardy의 Pavia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인 보기라(Voghera)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

 

左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右 지안카를로 지아메티, 발렌티노 가라바니

1949년 파리로 이주하여 '에콜 데 보자르'와 '파리 의상조합'에서 공부했다.

1959년에 그는 이탈리아로 귀국해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지안카를로 지아메티(Giancarlo Giammetti)'를 만나 로마에 첫 번째 패션 하우스를 여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

 

1960년에 최초 설립된 메종 발렌티노.
1961년, '스파르타쿠스'의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발렌티노를 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발렌티노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대담하고 생생한 색상, 복잡한 자수, 고급스러운 소재감이 특징이다.

덕분에 '리처드 버튼(Richard Burton)'과의 두 번째 결혼식에서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를 포함하여 상당수의 할리우드 유명인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퍼져나갔다.

발렌티노는 상기한 정교한 디자인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 덕택에 빠른 속도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左 발렌티노 1970s 레디 투 웨어, 右 발렌티노 파리 매장.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들어 발렌티노는 계속해 브랜드를 확장했다.

대표적으로 레디-투-웨어(기성복) 컬렉션과 향수 및 액세서리 라인 출시에 총력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라 성공을 바탕으로 또한 파리, 런던, 뉴욕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매장을 확장하기까지 하였다.

 

左 피엘파올로 피춀리, 右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2008년에 들어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브랜드에서 은퇴했으며 현재는 2012년에 카타르 왕실이 인수하여 소유하고 있다.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듀오 디자이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와 '피엘파올로 피춀리(Pier Paolo Piccioli)'가 선정되었다.

 

재생 가능한 '오픈 포 어 체인지' 스니커증를 출시한 발렌티노.

 

그들 덕분에 발렌티노는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며 - '고급스러움'과 '세련미'라는 헤리티지를 충실히 유지하면서 계속 발전해올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디렉터 임명 이후의 큰 변화로 브랜드 내에서 또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폐기물을 줄이는 등 책임감 있는 패션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을 구현하여 지속 가능성과 윤리적 문제 역시도 수용하였다.

 

左 발렌티노 레드, 右 발렌티노 락스터드 언타이틀 스니커즈

 

지금의 발렌티노를 상징하는 것은 '발렌티노 레드'와 '락스터드'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VLTN(VaLenTiNo)'라는 축약 로고, 혹은 한층 더 줄여 'V'를 해당 디자인에 녹여서 컬렉션을 출시한다.

과거 정통성 있는 오뜨 꾸뛰르적 헤리티지가 화려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결론

오늘날 발렌티노는 업계에서 (특히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인정받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중 하나다.

이탈리아의 화려함과 세련미의 정수를 담은 발렌티노가 패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60년 이상의 풍부한 역사를 지닌 발렌티노는 이제는 럭셔리 패션의 분명한 상징적인 존재로써 자리 잡았다.

오늘도 읽어준 독자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